마녀의 거울 그리고 왕세자.
w. 던전
사람들은 아름다운 백설 공주를 사랑했다. 마녀 같은 새어머니 아래에서 자라나 계략에 빠져 숲속에서 깊은 잠이 들었던 그 공주의 이야기를 아꼈다. 사람들의 입을 타고 내려간 이야기는 조금씩 바뀌었지만 여전히 백설 공주를 사랑하고 동화책에 담았다. 그 이야기는 수없이 많은 시간이 흐르도록 여러 가지의 갈래로 퍼져나갔다. 셀 수 없는 언어로 번역되어 부모들의 입을 타고 아이들에게 전해졌다. 아이들에게는 선망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아이들은 왕자와 같이 멋있는 사람이 되겠다고 소리쳤다.
하지만 그들은 알지 못했다. 마녀로 비친 새어머니에 대한 진실을. 사실 그 누구도 그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마녀에게 어떤 이야기가 있었다 한들 그 누구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권선징악의 동화책 속에서 누가 선 대신 악의 이야기에 관심이 있었을까. 백설 공주를 미워하고 시기했던 것은 마녀 같은 왕비가 아니었다. 아무도 관심 가지지 않았던 마녀로 비친 한 사람의 이야기를 누군가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마녀가 지니고 있었다고 전해진 전설의 거울이 카로 왕국의 어느 탑 속에 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었다. 카로의 왕세자 발렌티노는 누군가의 장난이라고 여기면서도 그 거울을 찾기 위해 수많은 탑을 찾아다녔다. 꼭 들어야 할 대답이 있어서, 직접 듣고 확인해야 할 대답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왕비도 찾지 못한 답을 발렌티노가 찾아 나섰다. 수십 개의 탑에 직접 올랐고 정상에 아무것도 없는 것을 직접 확인하고 실망하기를 계속해서 반복했다. 비가 오는 날도 있었고 바람이 심하게 불던 날도 있었다. 탑은 흔들리지 않았지만, 발렌티노의 속이 시끄러웠다. 몇 개 남지 않은 탑을 오르며 이제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곳의 계단을 밟으며 생각했다.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그렇게 생각한 것도 벌써 다섯 번이 넘고 있었다.
발렌티노가 돌계단을 오르며 저 자신에게 다짐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탑의 꼭대기에 마련된 작은 방의 문이 눈앞에 나타났다. 먼지가 뿌옇게 쌓인 탑의 꼭대기 방을 열고 들어섰을 때 발렌티노는 밀려오는 먼지에 기침했다. 다가오는 병사를 무르고 안으로 들어서며 손에 들고 있던 횃불로 방안을 비췄다. 문을 닫고 홀로 방안에 들어선 발렌티노가 벽에 달린 촛불에 불을 붙였다. 방안은 금세 환해졌다.
“거울아.”
검은 천으로 온몸을 감싼 발렌티노는 다소 낮은 목소리로 거울을 불렀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방에서 카로의 왕세자 발렌티노는 얼굴을 감싼 천을 들춰내고 거울 앞에 앉았다. 수북이 쌓인 거울의 먼지를 닦아내고 후-하고 숨을 불었다. 먼지가 방안에 퍼졌지만, 발렌티노는 신경 쓰지 않았다. 먼지가 제 어깨에 앉는 것도 모르고 거울 속에 미친 자신과 마주했다. 마른 침을 한 모금 삼키고 거울을 향해 물었다.
“…내가 제일 사랑한 사람은 누구니.”
발렌티노는 돌아오지 않는 대답 소리에 허망하게 웃었다. 백설 공주 이야기의 거울은 왕비의 물음에 그렇게 늘 백설 공주라고 대답해주었는데 전설의 그 거울은 발렌티노에게 아무런 말조차 해주지 않았다. 거울을 찾으면 이 물음의 답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 발렌티노가 허무하게 웃었다. 그 누구도 왕비의 이야기에, 거울의 이야기에 궁금증을 가지지 않았던 이유는 바로 이런 것이었을까. 결국, 왕비도 얻지 못했던 답을 자신이 찾으려던 것은 잘못된 방법이었을까.
그 이후로도 거울은 아무런 답이 없었지만, 발렌티노는 그 탑을 매일 같이 찾았다. 거울을 옮기는 방법도 있지 않냐고 누군가 발렌티노를 설득시키곤 했지만, 발렌티노는 고개를 저었다. 저 거울을 보는 시간은 하루 한 시간이었으면 충분했다. 사람들은 모두 발렌티노를 바라보며 손가락질했다. 그리고 곧 그를 미친 사람 보듯 했다.
- 거울 방에서 나오지 않는 왕세자.
탑의 가장 높은 곳에 있는 거울 방에 있는 시간 만큼은 발렌티노는 자유로웠다. 한 나라의 왕세자라는 위치도, 그 자리를 어떻게 지키고 있었는지, 그 누구의 목소리도 그 누구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거울 앞에 초라하게 앉은 자신을 바라보는 시간이었다.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앉아 그럴싸한 옷을 입고 있는 저 자신. 겉가죽만 남아 텅 비어버린 왕세자. 발렌티노는 거울을 향해 손을 뻗었다. 비틀어진 웃음을 짓고 있는 자신을 마주하고 있었다.
- 제 친구를 사지로 몰아넣은 왕세자.
하나뿐인 친우. 아딘은 형장의 이슬이 되어 사라졌다. 제국의 반란을 가져왔다는 것으로 아딘과 수많은 이들이 함께 생을 달리했다. 발렌티노는 그것이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했다. 누군가는 아딘이 속았다고 모함으로 죽음을 맞이하였다고 목소리를 냈다. 이처럼 카로 사람들은 아딘의 속셈을 알아차리지 못해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정작 괜찮지 않은 것은 발렌티노 저 자신이었다.
- 친구를 잃은 슬픔을 그것으로 대신하려는 왕세자.
이 감정은 정확히 슬픔이 아니었다. 기쁨이었어야 했다. 케일이 발렌티노에게 축배를 내밀었을 때도 발렌티노는 분명히 웃고 있었다. 마치 왕비가 백설 공주에게 독 사과를 건네고 돌아와 거울에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 누구냐고 물었던 그 순간과 같은 기분이었다. 가장 정의로운 이, 가장 현명한 왕세자가 되었음에도 손톱을 물어뜯었다. 가장 아름답게 꾸미고 거울 앞에 앉아서 물었을 왕비를 떠올리며 발렌티노가 얼굴을 쓸어내렸다.
발렌티노는 다시 거울 앞에 앉았다. 어김없이 질문을 던지려고 고개를 들었을 때 발렌티노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헛웃음이 터져 나왔고 눈을 깊이 감았다 떴다. 거울에 비치고 있는 것은 저 자신이 아니라 아딘이였다. 이제는 다시 만날 수 없는, 그 누구보다 사랑했던 사람. 발렌티노는 먼지로 물든 제 손을 내려다 봤다. 그리고는 고개를 저었다. 내가 그런 것이 아니라고, 그러고 싶어서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고. 발렌티노는 고개를 들었다. 여전히 거울 속에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아딘이 발렌티노를 바라보며 웃고 있었다.
- 패배자.
누군가는 아딘이 아닌 발렌티노를 그렇게 불렀다. 왕비가 백설 공주가 깨어난 것을 알고 절망에 빠졌던 것처럼 발렌티노는 강하게 부정하고 있었다. 지지 않았다고, 패배한 것은 자신이 아니라고. 먼지가 가득한 손을 몇 번이고 망토에 문질렀다. 검은 망토에 회색 먼지가 곳곳에 묻어났다.
“그만…”
거울 속에 비친 모습, 왜곡되어버린 현실.
“그래, 내가 제일 사랑했던 것은 너였지.”
거울 속의 아딘이 아프게 웃었다. 아딘과 발렌티노에게는 이어질 수 없는 병든 사랑이었다. 서로에게 뻗고 있었지만, 쉬이 져버리고 땅에 처박혔다. 형상이 한번 굴절되고 전혀 다른 모습을 비추는 거울과 같은 사랑이었다. 발렌티노는 다시 고개를 저었다. 왜 자신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던 답을 얻기 위해 발버둥 쳤을까. 아딘으로 시작해 아딘으로 끝나는 이 이야기를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싶어서?
- 내가 사랑한 것은 네가 아니야.
거울 속의 아딘이 말했다. 거짓말. 발렌티노가 주먹을 꽉 쥐었다. 내가 아니면 누가 또 있단 말인가. 분노한 발렌티노의 눈빛을 보며 거울 속 아딘이 쓰게 웃었다.
- 내가 죽기 전의 너야.
“뭐?”
- 지금의 네가 아니야. 내가 기다리는 사람은.
자신을 부정하고 있는 아딘의 모습을 보며 발렌티노는 화가 났다. 아딘의 말을 듣기 위해 얼마나 많은 탑과 계단을 올랐는지 전혀 모르면서, 자신을 부정하고 있다는 것에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 정도로 깊이 주먹을 쥐었다. 아딘이 죽기 전의 발렌티노. 아딘은 그런 발렌티노를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그 말의 정답은 하나였다.
- 기다릴게.
아딘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된 발렌티노는 거울에서 흐릿하게 사라지는 아딘을 두 눈을 크게 뜨고 담고 있었다. 아딘이 사라지자 발렌티노의 입에서 웃음이 터지기 시작했다. 병들어버린 사랑은 병든 그것뿐만 아니라 둘을 모두 갉아먹었다. 아딘이 사라진 거울을 손으로 쓸어내리던 발렌티노가 웃으며 거울 앞에서 일어났다. 한 사람이 들기 어려울 정도로 무겁다던 거울을 향해 발렌티노가 검을 빼 들었다.
“네가 기다리는 것은 죽은 나겠지.”
발렌티노가 검을 던졌고 거울은 깨지고 그 벽에 그대로 발렌티노의 검이 박혔다. 왕비는 백설 공주가 살아났다는 사실에 분노하며 거울을 깼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발렌티노는 산산조각이 난 거울을 바라보며 웃었다. 마치 아딘과 발렌티노의 관계 같았다. 이제 더는 쓸모 없어진 유리 조각에 지나치지 않는 거울 조각들을 밟고 그 위에 섰다. 발렌티노가 어깨를 떨며 웃기 시작했다.
아딘의 마지막은 어떤 표정이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웃고 있었는지, 울고 있었는지. 손톱이 박혀 피가 났던 손바닥을 바라봤다. 굳어버린 피가 검게 변해 있었다. 아딘의 피보다 붉은 자신의 피를 보며 발렌티노가 걸음을 옮겼다.
“아딘.”
발렌티노는 산산이 조각난 거울을 창문 밖으로 내밀었다. 탑 꼭대기에 올라선 발렌티노가 거울 조각을 햇빛에 비췄다. 햇빛이 반짝여 발렌티노의 눈을 괴롭혔다.
“네가 있는 곳이 지옥이라고 해도.”
하늘에 떠 있는 태양을 향해 그 거울 조각을 던졌다. 네게 닿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탑 아래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누군가 거울 조각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 급히 탑을 오르고 있는 것 같았다. 거울 조각이 낸 상처가 발렌티노의 손끝을 타고 발아래로 떨어지고 있었다.
툭. 툭.
“그곳에 가면 네 대답을 들을 수 있겠지.”
발렌티노가 땅으로 떨어진 거울 조각을 바라보고 있었다. 툭. 툭. 발로 창문틀을 두들긴 발렌티노는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자기 자신에게 하는 노크였다. 죽음으로 가는 문을 열어 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마법사가 탑에 도착하기 전에 발렌티노는 가장 높은 곳에서 가장 낮고 어두운 곳으로 떨어졌다. 오직 하나의 답을 찾기 위해 또 다른 여행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