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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석거리며 부서져 내리는 흰 꽃들이 가득한 광장에는 많은 사람이 있었다. 케일의 관이 중앙 광장을 지나기로 한 날이었다. 그는 로운의 영웅이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었으나 유달리 일찍 생을 마감했다. 케일의 장례식에는 많은 이들이 왔다. 성대하게 치러진 장례식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많은 돈이 들어가더라도, 아무리 성대한 장례식이라도 그들의 낮을 밝게 만들어 줄 수는 없었다. 케일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약하던 숨은 멎었고, 아름다운 얼굴은 마법으로 유지되어 도자기 인형같이 창백하게 빛나고 있었다. 광장 사방에 흩날리는 하얀 종이 쪼가리에 코가 매웠다.

추모문은 황제가 직접 작성했다. 검은 피부와 검은 머리카락의 황제는 케일의 공로를 치하하며 새로운 작위를 내렸다. 황제의 목소리는 때로는 끊겼고, 때로는 물에 잠긴 듯했다. 그러나 눈물 한 방울 맺히는 기색도 없었다. 뒤에 서 있던 성자와 네크로맨서가 몇 번 눈가를 훔칠 뿐이었다. 보고 있자면 검은 머리의 소드마스터만이 없었다. 그는 며칠 전부터 헤니투스 영지에 있었다. 장례식을 보지 않겠다는 전갈이 오갔다. 눈썰미 좋은 이들이라면 공자가 그렇게나 애지중지하던 두 마리의 작은 고양이들도 없었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었다.

많은 병사의 호위를 받으며 웅장하고 느린 곡과 함께 중앙 광장을 천천히 지나간 케일은 다시 궁으로 들어갔다. 그는 이제 며칠간 로운의 예법에 따른 장례식을 마저 마치고 안치될 것이다. 헤니투스 가에서는 케일이 가문의 무덤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을 이해했다. 그는 너무나 큰 영웅이어서 일개 거북이의 품에만 둘 수는 없는 법이었다. 그가 붉은 머리를 완전히 흙 속에 감춰버린 후에도 수도의 엄숙한 분위기는 며칠간 계속되었다. 로운은 다시 없을 영웅에게 깊이 애도했다.

헤니투스 영지는 조용했다. 모든 이들이 슬픔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었지만 영지는 제대로 돌아갔다. 백작과 백작 부인, 바센과 릴리는 이보다 가까울 수 없는 이의 죽음에 생각보다 의연한 모습을 보였다. 그들은 쓰게 웃으며 할 일을 다할 뿐이라고 했다. 소문과 다르게 저택 안에서는 최 한의 그림자도 볼 수 없었다.

최 한은 짱돌 저택에 있었다. 거기에는 장례식에 참가했거나 참가하지 않았던 케일의 주변 사람 모두가 있었다. 론, 비크로스, 잭, 케이지, ...에르하벤과 라온도, 보이지 않았던 온과 홍도, 최 한도, 그리고 케일까지도. 케일은 이제 익숙해진 레모네이드를 자연스럽게 받아 마셨다. 창백하게 빛나는 피부였음에도 그는 살아있었다.

 

"약한 인간아! 황제가 또 연락한다!"

 

케일은 인상을 찌푸렸다. 이번이 오늘만 세 번째 연락이었다. 그는 침대에 늘어지게 누워서 전화를 받기로 했다.

 

"...연결해."

 

잠시 후 영상통신구 위로 미안한 기색이 완연한 알베르가 눈을 굴렸다.

 

"이번엔 또 무슨 일이십니까?"

"너 황금패 못 쓴 것들 있잖아. 그거 어떻게 할지 좀 상의하려고. 죽은 신분으로 쓸 수는 없잖아? ...그리고 미안하기도 해서."

 

케일은 일부러 보란 듯 한껏 구겨진 얼굴을 했다. 이번이 288번째던가? 알베르는 케일의 백수계획을 위해 죽은 척하자는 의견을 직접 낸 주제에 능글한 얼굴 한 겹 아래 저런 비 맞은 강아지 같은 표정을 하고서 사과를 뻔질나게 해대서 노이로제에 걸릴 것 같았다. 괜찮다고 아무리 말해도 도통 들어주지를 않았다. 요즘의 행복한 인생에서 제일의 골칫거리였다.

 

"미안하다는 말 좀 그만 하세요. 최근 제 인생 중에 제일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런다고 내가 한 일이 없어지는 건"

"하해와 같은 마음에 몸 둘 바를 모르겠으나 폐하의 번뜩이고 지혜로운 말씀을 그리 많이 듣기에는 미천한 제 귀가 모자랍니다. 그만 미안해하시고, 황금패는.."

 

케일은 찌푸려지는 알베르의 얼굴을 보며 엄지와 검지로 동그라미를 그렸다.

 

"이걸로 바꿔주세요."

 

알베르는 결국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너 원하는 대로 해주마. 사후관리 확실하니 걱정하지 마. 다른 필요한 건 없고?"

"저 알아서 잘하는 거 아시잖아요. 정 걱정되면 놀러나 오세요."

"못 갈 거 알고 하는 말이지?"

 

평화로운 때라고 일이 적지는 않은 모양인지 알베르는 평소와 같은 약간 피로한 모습이었다.

 

"잘 아시네요. 일 열심히 하세요. 저는 놀 겁니다."

"돌겠네... 한번 시간 내 보지."

"그걸 진짜로 오시겠다고요?"

"황제야 돌면 안 된다!"

"아무렴 로운의 영웅이자 빛나는 별이었던 공자의 초대인데 내가 거절할 리 있겠는가? 근시일 내에 다시 연락주겠네."

 

케일은 알베르의 화사한 미소를 보며 찝찝한 얼굴이 되었다. 진짜 오겠다고 할 줄은 몰랐던 터라 잠깐 사고가 느리게 돌아갔다.

 

"예... 뭐. 연락주십시오."

"그래. 다음에 보지."

 

케일은 끊긴 영상통신구를 잠시 떨떠름하게 보다가 주위를 둘러봤다. 평소와 같은 짱돌 저택은 밝고 깔끔하기는 했지만, 손님을 맞으려면 아무래도 조금은 준비를 해야 할 것 같았다. 아무래도 알베르 하나만 데려와야겠지? 머릿속으로 계획을 세우며 론을 불렀다.

 

"론."

"예, 도련님"

"손님 맞을 준비를 해야겠다."

 

케일은 창문을 열고 저택의 외관을 살피며 즐겁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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