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근데 저 집 아저씨는 엄청 높은 사람 아니냐? 근데 왜 맞고 살아?
누가 들으면 어쩌려고 그런 소릴 하냐? 그리고 맞고 사는 게 아니야. 치고받고 사는 거지. 저 집 그냥 맨날 싸우는 거 같던데.
어이고, 너희는 그 얘기를 모르냐?
개구쟁이 소년들이 으리으리한 양반집 앞에서 기웃거리고 있으면 길가에 앉아있던 추레한 노인이 말을 걸어왔다. 소년들은 서로를 마주보다가, 말없이 노인을 바라보았다. 무슨 얘기요. 노인은 웃으며 서두를 시작했다.
옛날에 말이다. 엄청 요리를 잘하는 주막이 있었단다. 아쉽게도 지금은 없지만 말이야.
거기에 엄청 잘 생긴 주인이 살았더랬지. 이국에서 온 사람 같았어. 이름도 그랬고. 뭐? 암행어사 짝 얘기하는 거 아니냐고? 들어보렴. 그 주인한테 한 눈에 반한 남자가 있었는데, 매일 그 주막에 드나들며 주인에게 구애를 했단다. 물론 좀 난폭한 구애긴 했지. 몇 번 주막 밖으로 쫓겨나기도 했었는데 바가지로 머리도 맞았었나. 그게 문제는 아니고. 흠. 한 열 번쯤 들이댔을까 결국 주인은 그를 받아주었단다. 주인의 아버지는 지금도 딱히 남자를 탐탁지 않게 여기는 것 같지만, 남자의 힘이 만만치 않았어. 그냥 쓰는 힘만 있는 게 아니라 모시는 양반이 있었던 거야. 그것도 왕과 줄이 닿아있는 귀족출신 양반 말이야. 그렇게 간신히 마음이 통한지도 얼마 되지 않아서 그는 자신이 모시는 귀족을 위해 한양으로 올라가야 했어. 다만 돌아오면 꼭 주인과 살겠다며 백년가약을 맺었어. 그것도 대낮이었던 것 같은데, 그날은 머리를 맞았나, 등을 차였나. 평소 같으면 때리지도 못하게 잡았을 걸 그냥 맞아주고 있어서 뭔가 했더니 한동안 보이지를 않더라고.
그 와중에 여기에 새로운 사또가 부임을 했지. 네가 태어나기 전이란다. 그런데 그 사또가 아주아주 나쁜 사람이었어. 선량한 백성들의 피같은 돈을 빼앗아가는 것도 모자라 여색에 남색까지 하는 방탕한 인간이었지. 그 사람한테 짝이 있든 없든 말이야. 어쨌든 그 사또의 눈에 주막의 주인이 눈에 들어온 거야. 얼굴도 잘생겼지. 몸도 좋지, 요리도 잘하지. 아주 자기 짝으로 탐이 난다 싶은 거야. 그 주막이 특히나 유명했으니 입소문을 타고 찾아왔다가 그 인간도 한 눈에 반한 거지. 주인을 잡아들여서 수청을 들라고 협박을 하지 뭐냐. 든다고 했겠어? 너희도 알겠지만 주인 성격도 보통 성격이 아니란다. 그 사또를 먼지 나게 패버린 바람에 옥에 갇혔어. 그걸 너희들도 봤으면 아주 까무러쳤을 거다. 사또 앞니가 나갔어. 주인은 사또를 패버렸는데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자기 옷에 묻은 먼지나 탈탈 털고, 아주 공포였지. 그 날을 계기로 주인한테는 죽어도 개기지 말자는 암암리의 규칙이 생겨났을 정도야.
옥에 갇힌 뒤에도 사또는 포기를 못하고 수청을 들면 죄를 사해주겠다는 정신 나간 소리를 했단다. 물론 주인의 태도는 아주 꿋꿋했어. 사또한테 한 유명한 말이 있지. 씻고나 다녀라. 그 즈음의 주인의 상태는 매우 좋지 않았지. 얼굴이 매우 수척했어. 옥에 갇혀서 그런 거겠지. 주인은 특히나 깔끔떠는 성격이었거든. 지금도 그 때 얘기를 하면 암행어사를 쥐어 패는 소리가 담벼락 너머에서도 들릴 지경이야. 미친놈아, 너 때문에. 그게 왜 내 탓이냐. 아주 난리도 아니지.
아무튼, 옥에 갇힌 주인이 점점 상태가 안 좋아지고 옥에서 계속 살 바에야 사또를 죽이든 자기가 죽든 하나는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을 때 그 때 한양에서 자기가 모시는 양반 귀족과 함게 짠하고 남자가 암행어사가 되어서 나타난 거야. 그 때 암행어사 출두요, 같은 말은 옆에 다른 놈이 했던 것 같은데. 그 순한 얼굴이 그렇게 무서워지는 순간이 또 있었을까. 출두패는 옆에 귀족한테 냅다 맡기고 허리에 찬 검 집 째로 사또를 그렇게 패더라니까. 몸에 있는 먼지가 다 털릴 정도로 맞았어. 죽지 않을 정도로만 열심히 팼지. 그러고 어떻게 됐냐? 풀려난 주인이 남자를 또 팼어. 옥에 갇힌 게 서러웠던 건지. 너무 늦게 왔다는 의미인지. 아니면 그냥 패고 싶었던 건지. 나도 이해하긴 힘들지만 그래, 저 집은 뭔가 주먹으로 대화를 하나보지. 한창 싸우는 걸 귀족이 말려서 일단락 될 정도였다니까. 아무리 그래도 사또로 있던 애를 그 지경으로 만들었는데 아무 일 없이 지나간 거 보면 모시는 귀족이 대단한 귀족이긴 한 가봐. 한양에서는 아주 모르는 인간이 없다는 것 같더만. 케, 뭐 케?
그 뒤로는 뭐, 느이들이 아는 대로 저렇게 허구한 날 싸우면서 살고 있지. 그래도 이 근처에서 알짱거리지는 말어라. 저 집에 사는 인간들 다 보통내기가 아니여. 고양이도 눈빛이 아주 쎄하고 날카로운 게 무섭다니까. 궁금한 거 해결 됐으면 얼른 집에나 돌아가렴.